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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로부터 자유로워지는 법

la_tomate 2022. 9. 18. 22:16
기대로부터 자유로워지는 법

인생에 어떤 어려움을 마주할 때면 책을 찾아보는 버릇이 있다. 책에는 어떤 문제에 대해서 깊이 있게 고민한 사람의 성찰이 담겨있으므로, 내가 마주한 어려움을 헤쳐나갈 힌트를 얻을 수 있다는 믿음에서다. 그렇게 답을 찾다 운명처럼 생각을 깨주는 책을 만나면 마치 병을 낫게 해주는 ‘약’을 복용하는 기분인데, 내게는 <기대하지 마라> 이 책이 그랬다.

책을 읽을 당시의 나는 무언가 계속 헛헛한 기분에 사로잡혀있었다. 목표가 있긴 한데 추진력이 생기지는 않았고, 포기하자니 지금의 반복되는 삶이 행복하지 않았다. 나 자신에게 기대하는 바는 높지만, 이를 달성하기 위한 동기가 떨어진 느낌이었다. 충족되지 못한 기대와 현실 사이에서 괴리감을 느끼니 매일 무언가 허전하고 부족한 기분이 들었다.

‘기대감’이 모든 문제의 원인이라고 깨달은 건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무기력한 삶으로 마음에 여유가 없어지다보니 사소한 것들에도 예민해졌다. 타인의 말과 행동에 신경 쓰는 일이 더 많아졌고, ‘나라면 이러지 않을 텐데’, ‘저 사람은 이렇게 생각해서 이렇게 행동하는 걸까?’ 하며 내 기준대로 다른 사람을 판단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문득, 이 판단의 기준이 ‘내가 되고 싶은 이상향’을 기준으로 만들어진다는 걸 깨달았다. 예를 들어 나는 위트 있는 사람이 매력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위트가 없는 사람을 볼 때 ‘덜 매력적’이다라고 판단했고, 반대로 나는 매 순간 위트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 했다. 이 모든 판단과 노력은 내가 세운 기대감을 근거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고 나니 갑자기 무언가를 기대한다는 게 날 불행하게 만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기대하지 않는 삶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약이 필요했다. 그렇게 서점으로 달려가 <기대하지 마라>를 집어 들고 나왔다.

이 책의 내용은 딱 두 마디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내가 통제할 수 없거나 지나치게 비현실적인 것을 기대한다면, 나는 불행해질 것이다.


이 대목을 읽자마자 노트를 꺼내서 반으로 접었다. 그리고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과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것>을 써내려갔다. 30분 이상을 써 내려가다 갑자기 머리를 한 대 맞은 듯 벙쪘다. 통제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의 차이가 너무도 명확하게 눈으로 보였다.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건 고작 3줄 정도였고, 통제할 수 없는 것은 종이를 뚫고 나갈 기세였다. ‘통제할 수 없음’ 에는 심지어 내 ‘감정’도 포함되었다.

내가 그 동안 허전함과 무기력함을 느낀 이유는 바로 통제할 수 없는 일에 지나치게 신경 썼기 때문이었다. 타인의 말과 행동, 심지어 내가 느끼는 감정들도 나는 전혀 통제할 수 없다. 또, 그동안 나 자신에게 바랐던 기대는 지나치게 비현실적이었다. 내가 통제할 수 있는 3가지는 내 ‘시간’, ‘노력’ 그리고 ‘과정’이었다. 내가 1시간을 공부를 할 건지 낮잠을 잘 건지. 어떤 목표를 향해 노력을 할 건지. 그 과정을 계획하고 통제하는 것. 이것밖에는 내 인생에서 내가 할 수 있는 통제가 없었다. 여기서 ‘과정’이라는 것이 매우 중요한데, 내가 아무리 시험을 위해 공부를 한다고 해도 그 과정을 노력할 뿐 시험에 대한 ‘결과’는 다시 내 통제 밖이라는 것이다. 나는 100점을 맞고자 죽어라 노력했을 수 있지만, 그날따라 컨디션이 너무 안 좋아서 시험을 망칠 수도 있다. 혹은 문제가 말도 안 되게 어렵게 나와서 100점을 맞지 못할 수 있다. 그렇다고 정확하게 95점, 이렇게 통제할 수 있는 사람이 어딨는가. 즉, 결과 또한 우리의 통제 밖이라는 걸 잊어서는 안 되는 거였다. 이걸 깨닫고 나니 ‘내가 불행해지기 위해 작정한 삶을 살았구나’라는 걸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둘째, 내 기대감을 타인과 조율한 적 없다면, 기대하는 것 자체가 망상이다.


“기대감을 상대에게 말하기 전까지는 모두 내 책임이다.” 그간 해온 나의 연애와 친구 관계 속에서 가졌던 의문점이 한 번에 풀리는 아주 명쾌한 문장이었다. 소중한 관계임에도 불구하고 안 좋은 끝이 났었던 건 ‘내 사람이다’ 범위에 들어온 사람들에게 갖는 나의 기대감이 가장 큰 문제였다. 책을 읽기 전 나는 자신에 대한 기대치가 매우 높은 사람이었다. 그러다 보니 내 애정 범위에 들어온 사람에게도 내 기대치를 그대로 투영하게 되었다. 나라면 으레 했을 배려들, 표현들이 상대에게서 되돌아오지 않을 때 나의 기대감은 실망으로 바뀌게 되었고, 그렇게 서운함이 쌓여갔다. 문제는 이 기대감을 제대로 터놓고 말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때로는 너무 쪼잔해 보여서, 때로는 다르게 표현을 했다고 생각해서 명확하게 서로의 기대치를 맞출 노력을 못했다. 그러다 서운함이 감정싸움으로 번질 때는 내 기대를 맞춰주지 않는 상대를 미워할 때도 있었다.

책을 읽고 나니 기대치를 맞추는 방법은 아주 간단했다. 먼저, 내가 가진 기대치가 현실적인 기대치인지 정리해본다. 그리고 해당 기대치를 이 관계에서 꼭 요구해야 하는지 고민한다. 만약 꼭 요구해야 하는 기대치라면, 상대에게 아주 명확하고 확실하게 "이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나는 이러이러한 기대치를 너가 맞춰주었으면 해."라고 말을 꺼낸다. 이때 절대 말을 돌리지도, 회피하지도 말고 반드시 솔직하게 말해야 한다. 마지막은 상대의 대답에 달렸다. 기대치를 상대가 흔쾌히 맞추거나 가능한 범위를 조율할 수 있다면 가장 건강하고 행복한 엔딩이지만, 상대가 거절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서도 항상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한다. 그리고 상대가 맞추지 않았을 때 이 관계에 어떤 일이 있을지, 내가 포기할 수 있을지도 마음을 정해야 한다.

이렇게 기대치를 서로 터놓고 얘기해서 세팅이 되었을 때야 비로소 상대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다. “그때 우리 함께 맞췄던 표현에 대한 기대치 있잖아, 너가 이렇게 노력해준다고 했는데 나는 그걸 받지 못하고 있어.”라는 서운함을 이제야 비추어도 된다는 뜻이다.

책을 한 두번 읽는 것만으로 삶이 드라마틱하게 바뀐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이 책을 읽기 전후로 내 인생과 관계를 대하는 자세가 매우 긍정적으로 바뀌었다는 건 사실이다. 나는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것들에 얼마나 많은 고민을 하고, 노력을 쏟고, 상처를 입었는지 깨달았다. 그래서 요즘에는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들에 정성을 기울이고 있고, 그게 나를 더 행복하고 건강하게 만들어주고 있다. 내 시간을 내가 컨트롤 하고, 내가 만나고 싶은 사람을 만나고, 내가 입고 싶은 옷을 입고, 먹고 싶은 걸 고민하는 일. 내가 그 날 하루에 할 수 있는 것들에 집중하며 매일을 나에 맞추어 살고 있다. 또한, 관계에 대한 마음가짐도 달라졌다. 타인에 대한 기대감을 낮추니 마음의 여유가 느껴졌다. 하루 아침에 기대감이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근래에는 타인이 내 기대에 맞추지 않았을 때 항상 되뇐다. 1. 이 관계에 꼭 필요한 기대인가? 2. 이 기대감을 말한 적이 있는가. 물론 아니라는 걸 알아도 감정은 나의 통제 밖이라 나아지는데 시간은 걸린다. 하지만 이렇게 고민하고 나면 마치 문제의 정답이 있는 것처럼 모든 게 깔끔하고 간단하게 해결된다.

명심하자. 말하지 않은 기대는 오롯이 내 책임이라는 걸. 기대로부터 자유로워지고 마음의 여유와 안정을 찾고 싶은 사람에게, 이 책을 적극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