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답게 사는 삶/생각의 끄적임

나에게도 이상형이 생겼다.

la_tomate 2022. 8. 7. 20:58

나에게도 이상형이 생겼다. 그동안 이상형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책을 읽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혹은 따뜻했으면 좋겠다 식으로 아주 자잘하거나 반대로 너무 광범위한 취향이라 나 조차도 못 만날 것 같았다.

 

그러다 문득, 나와 잘 어울리는 그리고 내가 오래도록 곁에 두고 싶은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고민해보았다. 나는 다정한 사람들에게 약하다. 그게 찰나의 관계를 위한 다정함이었을지라도, 다정함에는 강한 무기가 있다. 그들은 껍질을 드러낸 갑각류 같다. 이기적인 인간 본성을 거스르고, 남을 신경 쓰지 않아야 단단해지는 세상에서 말랑한 마음을 내어놓고 산다. 그런 이들을 만날 때마다 나는 감동과 위안을 얻는다. 나도 더 다정해도 될 것 같은 안도감. 그들은 나를 더 좋은 사람이 되게 만든다.

 

MBTI 유행이 처음 막 생겨났을 때 나도 검사를 해 본 적이 있다. 그 이후부터 지금까지 쭉 한결같이 ENFJ 성격 유형이 나왔는데, 어디선가 이 유형에 대한 글을 읽고 애착이 생겼다. ENFJ는 한국 사회에 존재하는 매우 극소수의 성격 유형이며, 타인을 위하는 마음이 많아 상처를 잘 받고 속임을 당하기 쉬운 유형이라 나이가 먹으면서도 계속 유지하기가 어려운 성격이라고 쓰인 글이었다. 어쨌든 내 나름의 다정한 구석을 지켜왔다는 자부심이랄까. 그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아서 더 애정이 생긴다. 그렇게 ‘다정하다’는 키워드가 하나의 이상형이 되었다.

 

두 번째로는 ‘섬세함’이다. 단어마다 어울리는 조합이 있다면, 다정함의 바탕에는 무던함보단 섬세함이 어울린다. 누군가에게 따뜻한 말을 건네거나 배려를 할 수 있다는 건, 그만큼 상대를 신경쓰고 상대의 작은 불편함을 캐치할 줄 알기 때문이다. 어떤 말과 행동이 상대에게 좋은 범주이고 불편한 범주인지 구분할 줄 아는 섬세함이 있어야 다정해질 수 있다는 게 내 생각이다. 나의 경우 자칫 과한 섬세함이 예민함으로 바뀔 때도 있지만, 애초에 민감하고 예민한 성향으로 태어났기에 이를 섬세함으로 포장하고 좋게 바라보려 한다. 그래서인지 나는 섬세한 사람들과 함께하면 일종의 동질감을 느낀다. 물론 그 섬세함이 다정한 범주여야 하는데, 섬세함에는 내뿜는 용과 받아들이는 용이 나뉘어있기 때문이다. 어떤 이는 섬세함이라는 무기를 뾰족하게 갈아 상대를 공격하거나 비난할 때 쓰지만, 어떤 이는 그저 남들보다 더 다양한 감각을 느끼고 받아들이는 일종의 레이더로 활용한다. 전자는 예민함을 통제하지 못해 감정을 내뿜게 되지만, 후자는 창의성을 발휘하거나 삶을 좀 더 풍족한 감각으로 채워주게 만든다. 그래서 나의 불편함을 조금 더 먼저 캐치하고, 내가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걸 구분해서 행동해주는 섬세한 사람들에게 나는 자주, 그리고 쉽게 반한다.

 

그래서 이상형을 만났냐고 묻는다면, 찾긴 찾았다. 아쉽게도 현실은 아니다. 글을 쓰는 와중에도 약간의 화끈거림이 느껴지지만, 내 이상형은 최근에 빠진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 나온 ‘이준호’라는 캐릭터이다. 지금까지 캐릭터를 연기하는 배우에는 빠져본 적이 있어도, 캐릭터 자체에 호감을 느끼고 빠진 건 난생 처음이다. 그를 한마디로 정의하면 섬세하고, 다정하다. 거기에 솔직함과 노련함도 한몫을 한다. (매력적이고 선한 웃음도 빼놓을 수 없다.)

그를 보고 싶어하는 우영우를 위해 창문에 손을 올려주는 예쁜 장면

웃긴 건 드라마에 등장하는 캐릭터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한 눈에 알아봤다는 것이다. ‘이게 섬세하고 다정한 사람이다.’ 그리고 그가 티비 속에서나마 존재하여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게 좋았다. (드라마를 안 본지가 몇 년이지만) 내가 기억하는 대부분의 드라마 속 남자 캐릭터들은 사회적으로 성공했지만, 애정을 받아본 경험이 별로 없거나 시니컬하고 냉정한 모습을 지녔다. 혹은 상처가 많아 쉽게 마음을 열지 않는 어두운 캐릭터로 일종의 ‘퇴폐미’나 ‘섹시함’이 강조되는 모습이 많았다. 그래서인지 그 역할을 연기하는 배우의 외모나 연기력에 감탄한 적은 있어도 내가 만나고 싶은 사람으로 상상해본 적은 없었는데 (혹은 상상하기에 너무 현실의 사람이 아닌 어디 조선시대에서 말을 타고 있다거나..) ‘이준호’라는 캐릭터는 달랐다. 자폐를 가진 변호사를 만나 사랑하며 그녀가 일상생활에서 겪는 불편함 들이나 어려움을 다정히 옆에서 들어주고 지켜주는 존재. 다정하다 해서 나약하지 않고, 섬세하다 해서 타인의 기분을 망가뜨리지 않는. 섬세하고 다정한 사람이다.

 

무언가에 쉽게 중독되지 않는 사람으로서, 분명 이 드라마가 끝나면 ‘이준호’라는 캐릭터도 희미해지겠지만. 중요한 건 내가 그간 고민했던 연인에 대해 새로운 관점을 제시했다는 것이다. 그동안은 분명 나와 함께할 사람을 찾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근사한 그림을 찾는 사람처럼 미지의 영역을 헤매는 것 같았다. ‘이 정도면 되지 않았나, 색깔은 좀 아쉽지만 그래도 멋지잖아. 다른 사람들꺼보다는 그래도 제법 근사한 것 같은데.’ 앞으로 나의 긴 50년 이상은 함께 장난치고 놀 친구를 만나는데도 내가 어떤 사람을 좋아하고 어떤 사람과 잘 어울리는지 몰라서 한참을 헤맸다.

 

나는 이제 나를 제법 잘 안다. 오래도록 함께할 사람이라면 섬세하고 다정한 사람이어야 한다. 그래서 서로의 아픔과 슬픔을 알아차려주고, 기쁨과 즐거움을 만끽하는 관계. 하루의 시작과 끝에 너와 함께해서 다행이라는 마음이 드는 따뜻한 사람. ‘당신답다’라는 말이 서로에게 칭찬이 될 수 있는 사이.

 

이 글은 아침에 놓인 엄마의 작은 쪽지에서 시작되었다. 내가 섬세하고 다정한 사람을 좋아할 수 밖에 없는 이유. 지난번 초록 통에 든 샐러드가 씻어진 줄 알고 그냥 먹었던 나를 위해 아침 일찍 일어나 깨끗이 씻은 청포도를 담고 ‘씻었음’ 쪽지를 붙이는 사랑으로부터. 나는 오래도록 길러져 왔다. 그러니 내가 다정한 당신을 알아보는 일이 그리 어렵지는 않을 것이다. 부디 상처로 움츠러들지 않고 우리가 함께할 따뜻한 날을 기다려주기를. 당신이 세상에 없다 한들 여전히 나는 다정하게 살아갈 것임도 분명하다는 말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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