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스키를 제대로 좋아한지는 작년 말부터가 처음인 것 같다. 그 전에는 그저 남들이 좋아한다길래 맛도 잘 모른 채 조금씩 도전하다가 이제는 정말로 내가 좋아서 한 두병씩 사두고 집에서 즐기기 시작했다. 처음 산 위스키는 ‘발베니 12년’이었지만, 위스키가 더 좋아진 계기는 ‘탈리스커 10년’을 마시고 나서다. 오늘은 짧은 위스키 지식으로 탈리스커를 예찬해보기로.
나는 어릴 적에 편식이 꽤 있었다. (지금도 마냥 잘 먹는다고는 못하겠다) 기본적으로 한국인이 의심스러울 정도로 매운 걸 잘 못 먹고, 바다 내음이나 비린내가 강한 음식은 쥐약이었다. 굴은 여전히 입에 대기도 어려워하며, 그나마 회는 육회부터 시작해서 생선회를 먹기 시작한 게 아직 5년이 채 안 됐다. 그러서인지 나는 뭐든 편식 없이 복스럽게 잘 먹는 사람을 부러워한다. 세상에 즐길 것들이 더 많아 보인다고 해야 할까. 그런 나에게 새로운 도전은 바로 ‘피트 위스키’였다.
위스키를 좋아하고 나서 특히 귓동냥으로 많이 들은 건 ‘피트(peat)’였다. 피트는 이탄이라고도 불리며 높은 강수량, 서늘한 기후, 배수와 통풍이 잘 되지 않는 환경에서 석탄 화가 되지 못하고 땅 속에 축적된 형태의 탄을 말한다. 그래서 석탄을 구하기 어렵고 피트가 많은 일부 지역(특히 아일라 지역)에서는 석탄을 쓰는 대신 피트를 활용하여 보리를 발아 건조한다. 피트가 탈 때 특유의 그을음 향, 타르 냄새, 훈제향 (어떤 이는 알코올 솜이나 병원 냄새라고도 한다) 이 나기 때문에 보리에 향이 묻어난다. 피트 향은 호불호가 매우 강한 편인데, 피트 위스키 냄새만 맡아도 싫어하는 사람이라면 마시는 건 어렵다고 봐야 한다.
비릿한 바다 내음이라고도 하고, 약품 냄새까지 난다는 피트를 내가 마실 수 있을 리가. 자연스럽게 편견이 생겨 그동안 피트 위스키는 한 번도 도전해보지 않았다. 살이 아릴 정도로 추운 한 겨울에 한 잔 마셔본 기억은 있으나 그날의 날씨는 뜨거운 커피를 타자마자 바로 아아가 되는 수준이라 무슨 맛을 느끼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 그저 ‘피트 위스키는 나랑 안 맞겠지’라는 생각으로 다른 위스키들만 조금씩 도전해본 게 다였다. 그리고 드디어 한 달 전. 입문용으로 많이 추천하는 ‘탈리스커 10년’을 처음 맛보았다.
탈리스커 10년은 피트 4 대장으로 유명한 아드벡, 라가불린, 라프로익, 보모어에 비하면 훨씬 부드럽고 밸런스가 좋으며 피트 향이 너무 튀지 않기 때문에 피트 위스키 입문용으로 가장 추천받는 라인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잔뜩 긴장했던 것과 다르게 탈리스커를 마시자마자 내가 느낀 건 그야말로 풍미였다. 약간의 바다내음도 나지만, 시원하기도 하고. 너무 스파이시하지 않아서 목 넘김도 부드럽고. 그러나 위스키의 가장 큰 매력인 묵직함은 놓치지 않은. 마치 갓 잡은 싱싱한 숭어회를 먹는 기분이었달까. ‘생선회가 이런 맛이라니!’하고 놀랐던 순간처럼, ‘피트 위스키가 이런 맛이라니!’하며 첫 모금에 반해버렸다.
그렇게 편견이 사라지고 나니 그 후로 더 피트 향이 강하고 캐릭터가 센 위스키도 덥석 덥석 마시기 시작했다. 어쩐지 피트를 못 마시는 사람들 앞에서는 ‘이렇게 맛있는 걸 못 마시다니 아쉽군’이라는 거드름도 좀 피우게 되었다. 이게 싫어하는 게 적은 이의 삶이구나.
탈리스커 10년은 나의 편견을 깨준 고마운 위스키이자, 생각보다 맘 편히 즐기는 게 많지 않은 나에게 넓은 스펙트럼의 즐거움을 선사해주었다. 가장 멋진 나이 듦은 역시, 싫어하는 것들보다 좋아하는 것들이 더 많아지는 삶이라는 것을 다시금 되새기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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